향신료의 왕으로 불리는 후추, 고기 맛을 살리기 위해서는 후추가 필수입니다. 온대 기후인 유럽에서는 열대 지방에서 나는 향신료가 귀했기에 중세 유럽 여러 나라는 후추 무역을 장악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습니다. 영국과 네덜란드는 후추 전쟁에서 후발주자였습니다. 그러나 스페인의 무적함대가 영국에게 패하면서 이후 후추를 찾기 위한 동인도 항로의 주인공은 영국과 네덜란드로 바뀌었습니다.
후추 무역을 위해 배를 띄우려면 많은 돈이 필요했습니다. 여러 투자자로부터 돈을 투자받아야 했고, 그런 만큼 투자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도 요구됐습니다. 이런 필요성에서 만든 조직체가 바로 회사입니다. 회사를 처음 만든 나라는 영국입니다. 1595년 네덜란드가 동인도 항로를 개척하자 1599년 런던시장에서는 후추 값이 폭등했습니다. 분노한 상인들은 영국 여왕에게 회사 설립을 위한 허가와 동방무역 독점권을 요구했고, 1600년 12월 31일 최초 회사인 영국 동인도회사가 설립되었습니다. 이에 위협을 느낀 네덜란드도 1602년 3월 동인도회사를 설립했습니다.
회사 설립은 영국이 빨랐지만, 후추 전쟁에 앞선 나라는 네덜란드였습니다. 그 배경에는 회계처리 방식의 차이가 있었습니다. 영국 동인도회사는 항해를 떠날 때마다 자금을 모으고, 후추를 가지고 돌아와 팔아서 생긴 수익을 분배한 뒤에는 회사를 청산하는 방식으로 운영했습니다. 반면에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영구히 존재하는 것으로 인정받은 최초 주식회사입니다. 주주들은 회사로부터 수익을 분배(배당)받거나, 회사 주식을 제3자에게 파는 방식으로 수익을 실현했습니다.
영국 동인도회사는 한 번이라도 항해에서 실패하면 그 항해에 투자한 사람들은 모두 파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영구히 존재하므로 이번 항해에 실패하더라도 다른 항해에서 번 돈으로 배당할 수 있어 보다 안정적으로 기업 활동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회사의 영속성이 가져온 투자의 안정성 덕분에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안정적으로 운영되었고, 후추 전쟁 초기 네덜란드가 영국을 앞서나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이후 영국도 네덜란드처럼 회사의 영속성을 인정합니다. 이렇듯 회사가 영구히 존재하면서 경영 활동을 계속할 것으로 보는 것을 회계에서는 '계속기업'이라고 합니다. 기업이 계속된다는 가정하에 회계처리를 한다는 뜻입니다.